1950년 6월 25일 (일) : 방위능력강화, DDT, 카쯔 전문점, 진짜 곰탕집 개업

Last Updated on 2024-01-28 by BallPen

1950년 6월 25일, 이 날은 북한군의 기습공격으로 우리나라에 625 전쟁이 발발한 비극의 날입니다.

과연 이날 신문에는 무슨 기사가 있었을까요?

당일의 연합신문 1면 기사와 몇 가지 광고 기사를 소개합니다.

생각과는 달리 한국전쟁이 발발한 6월 25일자 신문에서는 특별한 한국전쟁 기사는 볼 수 없었어요. 아마도 신문이 인쇄된 이후에 전쟁이 벌어졌기 때문인 것 같아요.

대신 미국 상원 외교 및 군사위원회가 공산주의 위협에 맞서 한국을 포함한 민주주의 국가의 방위능력을 강화하기 위한 트루먼(Harry S. Truman) 대통령의 군사원조안을 상원에서 통과시켜 주기를 요구하는 성명서 내용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1945년부터 소련이 붕괴되기 전인 1991년까지의 기간을 냉전(cold war)기간이라 하죠. 이 기간 중 1950~1953년 동안 벌어진 한국 전쟁은 냉전기에 벌어진 대표적인 위기 사태중 하나였습니다.

그런데 한국전쟁이 발발하는 당일까지 전쟁과 관련된 직접적인 기사가 없다는 것이 놀라워요.

그만큼 북한군의 기습공격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하겠죠. 또한 전쟁은 예측할 수 없이 갑작스럽게 벌어진다는 것도 알 수 있어요.

아래 [그림 1]은 1950년 6월 25일 연합신문의 1면 기사입니다.

대표 기사만 현대적 용어로 일부 바꾸어 읽어보겠습니다. 당시 냉전시대의 위기감과 한국을 위한 미국의 원조 노력을 어느 정도 느낄 수 있어요.

[그림 1] 1950년 6월 25일 연합신문 1면 기사
[그림 1] 1950년 6월 25일 연합신문 1면 기사

아래 [그림 2]는 1950년 6월 25일 연합신문 광고면 중 일부입니다. 몇 개의 광고를 함께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림 2]에서 가장 위에 가로 방향으로 있는 광고는 초강력살충제에 관한 것입니다. 최신의 강력 살충제임을 강조하고 있어요.

상품명이 ‘아세아승취액’으로 그 뜻을 풀어보면 아세아는 아시아(asia)의 음을 나타낸 말이고, 승취액은 파리를 멸망시키는 약물을 뜻해요.

그래서 그림을 보면 파리에 커다란 주사바늘이 꽂혀서 꼼짝 못하고 있어요.

이 약물의 성분은 광고 상단에 작은 글씨로 쓰여 있는데요. D.D.T입니다. 이 물질은 1874년 오스트리아의 자이들러(Othmar Zeidler) 박사에 의해 처음 만들어졌는데요.

DDT가 강력한 살충효과가 있다는 것을 발견한 사람은 스위스 화학자 파울 헤르만 뮐러(Paul Hermann Muller)에요. 이 공로로 1948년 뮐러는 노벨생리학\cdot의학상을 수상하게 됩니다.

DDT는 살충효과가 아주 높고 지속성이 좋아 곤충을 매개로 하는 전세계 전염병 발생률을 크게 낮추었어요.

우리나라에서도 DDT로 이, 빈대, 모기, 파리 등의 개체수를 크게 감소시켜 사람들의 건강 관리에 큰 기여를 하였어요.

하지만 DDT가 생태계를 위협하는 생물 독성이 있고 DDT에 내성을 가진 모기 등이 보고되면서 1970년대 전후로 전세계의 많은 국가에서 사용이 금지되었습니다. 1962년 레이첼 카슨(Rachel Louise Carson)이 집필한 ‘침묵의 봄’에서 DDT의 생태계 위험성을 지적하여 사람들의 큰 관심을 끌기도 하였어요.

[그림 2] 1950년 6월 25일 연합신문 광고면
[그림 2] 1950년 6월 25일 연합신문 광고면

[그림 2]에서 중간 쯤에 ‘낭킹’이라는 빈대 전멸약이 있는데요. 아마 이 약도 DDT로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높아요. 그만큼 이 당시에는 DDT가 엄청 많이 사용되었어요.

낭킹 광고의 위쪽을 보면 ‘과거 일본 경도에서 제조하여 국내를 거쳐 중국에 보급되어온 낭킹입니다’라고 쓰여 있어요. 또한 좌측 하단에 세로 글씨로 ‘무효반금(無效返金)’이라고 쓰여 있는데요. ‘효과가 없으면 물건 값을 되돌려준다’는 의미에요.

[그림 2]의 왼쪽 하단에 보면 돼지 그림이 있어요. 돼지 위에서부터 ‘서울 명물 출현 카쯔 전문’ 이라고 소개되어 있어요. 요즘도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돈까스(돈카츠) 전문점이 생긴 모양입니다.

정식은 400원이에요. 4가지 요리를 제공하는데 돈까스, 돼지고기국(돈지루, 豚汁), 백반(흰 쌀밥에 국과 반찬이 곁들여 나오는 음식), 심청(沈淸, 이건 뭔지 잘 모르겠음)이 있다고 해요.

새벽 1합이 120원이라고 쓰여 있는데 새벽에 가면 120원으로 하나의 요리를 먹을 수 있다는 걸까요? 잘 모르겠어요. 또 맥주도 300원에 팔아요.

식당 위치는 동일백화점내 식당가에 있다고 되어 있습니다.

곰탕집 개업 광고도 하나 있어요. [그림 3]이 그 광고에요.

[그림 3] 1950년 6월 25일 연합신문에 실린 백수관 개업 광고
[그림 3] 1950년 6월 25일 연합신문에 실린 백수관 개업 광고

위에서부터 순서대로 읽어보면 다음과 같아요.

재미있는 것은 이 당시에도 재래식으로 만든 진짜 곰탕임을 적극 홍보하고 있다는 거에요. 그 말은 진짜 재래식 곰탕은 1950년 보다도 한참 이전에 있었다는 의미겠죠.

과연 이때의 곰탕은 맛이 어땠을까요? 타임머신이 있다면 과거로 가서 맛보고 싶어요.

흥미롭고 도움이 되는 글이었나요? 리뷰를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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